진실을 밝히다. 최고의 변호인이 성범죄 사건을 변호한 방법에 대한 속사정
강간 사건을 맡게 되며..
기소가 되어 공판을 해야 하는 사건들 중 성범죄 사건은 상당히 어렵고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 적는 사건도 이처럼 부담이 되는 강간치상 + etc 사건이었는데 누군가가 이와 같은 경험을 한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적어본다.
피고인과의 만남
나는 피고인 A의 변호인으로 선임되었다.
A는 나 외 몇 군데 로펌을 더 선임했었는데 그 변호사님들은 소위 말하는 전관예우가 있다는? 판사, 검사 출신 변호사님들이었다.
A를 고소한 사람은 그의 여자친구였었고 결혼까지 약속했었던 B이다.
두 사람은 수년간 교제를 하며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결혼까지 약속하며 가족들과 상견례를 하는 등 깊은 사이였는데 다툼이 심각해지자 B가 A에게 헤어지자 하였음에도 A는 B의 집에 찾아가 성관계를 맺게 된 사건이다.
위 사건에서 A는 당시 B와 화해를 했고 이후 성관계를 했으나 이후 다투게 되었다 주장하고
B는 화해한 적 없고 A와 헤어지자고 했으나 끝까지 집으로 찾아와 강간을 당했다는 주장이다.
강간 등 성범죄로 기소가 되면 먼저 해야 할 일. 무죄야 유죄야
기소가 되면 관련 증거자료 등을 검토한 뒤 무죄를 주장할 것인지 아니면 유죄를 인정하고 반성을 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위 선택은 재판이 시작될 때 하게 되는데 어떤 주장을 하느냐에 따라 뒤이을 절차가 상당히 달라지기 때문에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물론 “죄송합니다. 잘못을 인정합니다”라고 했다가 이후에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해서 안되겠습니다. 전 그런 적 없습니다”라고 주장을 해도 되지만 판사도 사람인지라 당사자의 주장이 이랬다저랬다 바뀌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성이 상당히 떨어져서 불리할 수 있다.
즉, 일관성 있는 주장이 중요하다.
가끔 1심에서 죄를 전부 인정한다고 했다가 생각보다 세게 형이 나오자 2심에서 무죄를 다투는 경우들이 있다. 이때 새로운 증거들이 나오지 않는 이상 결과를 바꾸기는 상당히 어렵다.
나만이 무죄가 안된다고 하였다.
본 사건에서 A는 무죄라 하였고 다른 변호사님들도 무죄가 된다 판단했다.
그러나 내 판단은 조금 달랐다. A의 입장에서 다툴 부분도 있으나 무죄는 어렵다고 본 것이다.
A와 B 간에 있었던 그날의 일은 당사자 외에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겠지만 법원은 증거로 판단하는 곳이고 현출된 증거들을 살펴본 결과 무죄로 판단 받기에는 큰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나와 A 그리고 다른 변호인들과 마찰이 발생했다.
A의 입장에서는 무죄를 받기 위해 변호인을 선임한 것인데 안된다 하니 화를 낼 수 있겠지만 의뢰인의 말에 “네. 맞습니다”라고만 말하는 예스맨이 되기 위해 내가 선임된 것은 아닌지라 내 의견을 지속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소위 판사, 검사 출신들의 전관 변호사님들께서 무죄가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수많은 변호사들 중 혼자서만 안된다고 했으니 나에게 힘이 실릴 수가 없었다.
시작된 재판 그리고...
결국 A와 다른 변호사님들의 의견대로 무죄를 주장하고 관련 사람들의 증인신문 등 절차를 진행하였다.
큰 입장에서 차이가 있으나 방향이 정해지면 그에 맞게 대처를 해야 한다. 무엇인가 조금이나마 유리한 부분은 없는지 검토하고 대응하는 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여러 변호사들이 함께 있다 보니 사건 진행에 있어서도 마찰이 있었다.
다른 변호사님들과 A는 당시 수사를 했었던 경찰부터 시작하여 관련자들을 전부 불러 증인신문을 하고 A가 진술했던 부분 대부분을 부인하거나 고치는 등 방식으로 진행하려 했고 나는 이러한 행동은 오히려 A의 행동에 불신만 심어주기 때문에 핵심적인 부분만 추려서 다투고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했다.
그러나 역시 내 의견대로 진행되지는 않았고 사건 진행을 하던 재판부에서는 “이렇게까지 하는 경우가 있느냐?”라고 물어보는데 곤란한 절차일 때는 나에게만 진술을 맡기니 나로서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참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모든 재판 절차가 종료되고 관련 자료들을 모아 의견서를 만들어 제출하였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냥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옳은 것인가? 혹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에 A와 저녁을 먹으며 “내 생각에는 OO 한 점이 상당히 불리하고 이를 뒤집기가 힘들다. 무죄를 주장했으나 그것만이 길은 아니다”라고 했으나 A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A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우선 본 사건의 결과부터 말하자면 징역 O 년이 나왔다(집행유예 아님).
이에 대해 만약 내 주장대로 진행을 했다면 위 징역보단 감경되거나 경우에 따라 집행유예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고민이 생긴다.
1. 내 주장대로 유죄를 인정함.
이런 경우 만약 징역 10년이 나왔는데 죄를 인정하여 5년이 되었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때 A는 10년에서 5년이 감경되었으니 5년을 덜 살 수 있다.
그러나 유죄를 인정하겠다는 판단을 할 당시에는 10년이 나올지 무죄가 나올지 알 수 없고, 무죄가 나올 수 있었는데도 나 때문에 5년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2. 무죄를 주장함.
이 경우 결과는 좋지 않을 수 있다. 무죄를 주장한다는 것은 재판부에서 보기에 “이놈 전혀 반성의 기색이 없네?”라고 느껴 형이 세지는 경우가 많다.
다만, 무죄를 다투면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고,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끝까지 무죄를 다툴 만큼 스스로 결백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더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형사사건의 변호인은 의뢰인의 말대로만 진행하는 예스맨이 돼서는 안 된다.
재판을 하는 과정 중간중간에도 나는 다른 변호인들에게 “이 사건은 무죄가 안 나옵니다”라고까지 단적으로 말하며 반대 의견을 표했는데 반발심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무수하게 다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피고인이나 의뢰인의 말대로 그저 따를 뿐이라면 변호인은 있을 이유가 없다. 당사자야 주관적인 입장에서 사건을 볼 수밖에 없지만 변호인은 객관적으로 사건을 보고 판단하여 의뢰인에게 여러 가능성과 선택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 형사재판이나 혹은 사건들을 미팅할 때면 당사자에게 사건에 대한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을 전부 설명해 준다. 어떤 변호사님께서는 “그렇게 하면 누가 너랑 계약하냐”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는데 당사자 입장에서는 적어도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자신에게 어떤 선택권이 있는 것인지 와 선택에 따라 예상되는 결과는 어떤지 정도는 알고 사건에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성범죄 강간변호인으로서 사건을 마치며
1심 판결 이후 당사자는 법정구속이 되었고 나는 이후 몇 차례 접견을 갔었다. 비록 나와 마찰이 많이 있었지만 당사자의 심란한 마음이야 내가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로부터 며칠 후 A의 가족들에게 다시금 연락이와 2심의 변호를 부탁했으나 이는 거절하였다. 1심에서 나와 다툰 문제도 있었으나 당사자는 2심에서도 무죄를 주장하기를 원했고 (당시 대형 로펌들도 선임되었는데 변호인들과) 사건 진행 방향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최종 결과는 내가 예상한 대로 나왔는데 무엇이 더 옳은 판단인지 결론 내리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것은 아마 당사자만이 알 것이다.
법률사무소이화 장효강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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